일상의 단상2011. 12. 29. 19:52

몇 달전, 페이스북 상에 공개된 나의 프로필 중에서 학력에 관한 사항을 삭제했다. 페이스북 상에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정체성을 학력을 통해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페이스북의 공개 프로필 상에 자신의 학력을 기재하는 것이 꼭 과시용이라 할 수는 없기에, 뭘 그리 유난을 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한국 사회 풍토에서, 나는 선입견 없이 온전히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평가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내가 역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종종 다른 사람의 학력을 궁금해하며, 그에 대한 판단기준 중의 하나로 포함하곤 한다. 열등의식의 발로였는지 몰라도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에는 그 경향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매년 나눠주는 원우회 수첩에 기재된 사람들의 학력을 확인했고, 그 중 학력을 몰랐을 때와 비교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의 학력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럼에도 그것을 떠벌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사람을 대할 때 학력이든, 직업이든 그 사람의 뒷배경을 보고 먼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속물스러운 태도라는 일종의 결벽 증세가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비단 학력에 대한 말과 행동이 아닐지라도 매사에 속물스럽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규정하는 속물스러움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람을 속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사에 노력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꾸미지 않아도 속물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학력 지상주의 풍토를 열렬히 비판하면서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판단기준을 갖고 있고,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그런 것들을 부러워한다. 내안의 속물스러움을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럴 땐 이 사회가 혹은 내가 속한 주변환경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물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얼마전 가수 김창완이 한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 중에, 요즘사회에는 영웅들이 너무 많다고, 사람들은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화려한 이력의 사람들만 쳐다보느라 정작 자기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는데 인색하다는 맥락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결국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만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