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작문2011. 7. 16. 09:54

이탈리아의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1991년 정계에 입문했다. 보통의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정치 의사를 처음 밝히는데 반해, 그는 자신의 영상을 제작해 방송에 내보내는 파격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의 전략은 효과적이었고, 그 덕분에 그는 현재까지 3번 총리직에 오르며 막강한 정치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그의 뒤에 그가 소유한 각종 매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었다. 신문․방송의 겸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방겸영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한국판 베를루스코니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신문법에 의하면 현재 신문사는 종합편성 방송 채널을 소유할 수 없다. 때문에 케이블 TV 등 70여 개 계열사를 보유한 중앙일보도 종합편성 방송은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규칙은 방송법에서 다시 한 번 명시되어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여론을 장악할 수 있는 소수 거대 언론의 출현을 막자는데 있다. 특정한 정파성을 띈 언론사의 보도가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여론이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약 75%를 보수적인 논조의 거대 신문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 하에서는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신방겸영이 허용된다면 이른바 ‘조중동 방송’이 생겨날 것을 우려한다. 반면 이를 추진하는 정부, 여당에서는 공영방송이 민영화되더라도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송의 규모로 볼 때 특정 언론사가 독점적인 지분을 소유할 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일반 대기업과 언론사가 함께 방송의 지분을 소유했을 때, 언론에 무지한 대기업에서 편집권을 언론사에 전면 위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특정 언론사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방송 편성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그 주체는 보수 거대 언론인 ‘조중동’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신방겸영을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현 한국 방송체계의 비경쟁적 구조이다. 그들은 다공영 일민영 체제의 현 구조가 경쟁을 막고,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영화 이후 언론사들의 경쟁을 통해 방송의 선진화를 이루자고 한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민영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민영방송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담당했던 공익성의 기능을 온전히 하기 힘들다. 주요 수입원인 광고주들로부터의 압박도 심해져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모든 매체는 한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방송, 신문, 잡지 영화 할 것 없이 모두 베를루스코니의 뜻에 따라 돌아간다. 언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 쪽으로 여론이 치우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여론은 신문시장의 왜곡된 구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신방겸영보다 앞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는 신문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특정 언론사에 의해 독접되는 구조를 개선한 이후에야 신방겸영 문제도 논의해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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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11. 7. 16. 09:53

싱가포르에 한 성공한 사업가가 있다. 그는 네잎클로버 잎을 압착시켜 부착한 악세서리 하나로 3년만에 싱가포르 최고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의 마케팅 전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가 제품을 팔 때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의 행운을 빌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에게 행운이 생길 때마다 이를 기록하고 신문광고에 실었다. 제품 구매 후 행운을 얻은 고객은 하나 둘씩 늘어났고, 몇 천명이 되면서 그 제품은 전역에 걸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고객의 행운을 자신의 이익과 연결시키는 전략을 소개하며, 자신은 ‘마음을 움직이는 경영’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마케팅 기법은 많은 기업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객에 대한 철저한 봉사정신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고, 제품을 파는 것이다. 소비자 주권이 향상되면서 이 마케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헌데 마음을 움직이는 마케팅 기법이 또 하나 필요한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정치이다. 많은 국민들이 마음을 돌린 정치인들이야 말로 이 기법을 절실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있는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특히 지난 6개월간 처절한 실패를 맛봤던 이명박 정부는 곱씹어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들은 경제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대통령을 뽑았지만 그는 그 마음을 진정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그가 쇠고기 재협상 이후 촉발된 촛불집회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했던 방식은 전혀 국민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부자들의 세금만 깎아주는 무리한 경제 부양책을 쓰고 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그것이 그가 성공한 정치인이 되기 위한 ‘마을을 움직이는’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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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10. 7. 7. 06:43

무엇인가 강력한 보상이 내겐 필요했다. 2008년 8월 대학교 졸업 후, 언론사 및 여타 기업에 들어가려고 취업준비를 한 것이 1년 4개월. 올해는 대학원에 들어가 보겠다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정책학 공부를 시작했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무엇 하나 이룬 것 없는 자신에게 항상 난 가혹하기만 했다. 채찍질만 하기 보다는 당근을 주자는 마음에서 대학원 필기시험 이후 여행을 계획했다. 내가 선택한 여행지는 바로 제주 올레길이다. 지난 2월 우연히 제주 올레길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사람들은 올레길에 왔다 가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자연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나도 문득 지난 2년간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싶어졌다.

 

6월초 한 대학원 필기시험을 끝으로 길게만 느껴졌던 5개월여의 수험생활이 끝났다.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새벽부터 서둘러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탈출하는 것이 대학 졸업 후 처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고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놀면서, 쉬면서, 걷다가 오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이후 내 삶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동반자는 없는 편이 나 자신과 올레길을 대면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았다. 아침 11시경 올레길 1코스 시작점에 도착해 여행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첫날 1코스와 5코스, 둘째 날 6, 7코스, 마지막 날은 12코스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과연 걸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올레 패스포트를 만들고 나니 빨리 스탬프를 받고 싶은 마음에 힘이 솟았다. 날씨는 조금 더웠지만 굴하지 않고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1코스는 코스 초반의 말미오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약간은 가파른 경사를 따라 말미오름에 오르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동안 고생한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건네려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외에도 1코스는 종달리, 오조리 마을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들을 지나갔다. 그 중 길거리의 작은 오락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옛 생각이 나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올레꾼들을 위한 암호라고 하는 파란색 표지를 찾으며 가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색 천이나 바위에 새겨진 파란색 화살표에 의지해 코스를 따라가야 하는데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었다. 가끔씩 양 갈래 길을 두고 헤매다 파란 표지를 발견할 때면 ‘당신은 길을 잘 찾아가고 있어요.’라고 내게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인생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내 삶에도 저런 표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성산일출봉을 지나 넓디넓은 광치기 해변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5코스로 이동해야만 했다.

 

5코스 시작을 느지막이 하는 바람에 코스의 2/3지점에 도착할 때엔 이미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의 충고에 따라 올레길을 이탈해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 죽 걸으면 서귀포시도 나오고, 6코스 시작점인 쇠소깍도 나온다고 하셨다. 예약한 숙소에서 거기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으니 꼭 찾아가야 했으나 걷고 걸어도 그곳은 나올 줄 몰랐다. 1시간 반을 걷다보니 어느새 쇠소깍을 지나쳐 6코스 1/4 지점까지 와있었다. 이리저리 헤매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돌아오면서 느낀 것은 ‘절대 무리하지 말자’였다.

 

오랜만에 많이 걸은 탓에 둘째 날은 조금 힘에 벅찼다. 먼 길을 가려면 천천히 가야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침 9시경 7코스에서 출발하면서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쉬엄쉬엄 가기로 마음먹었다. 첫날과 달리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지만 궂은 날씨도 빼어나기로 소문난 7코스의 절경을 가릴 수는 없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알려진 곳답게 7코스는 올레꾼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사람이 별로 없던 1, 5코스와 달리 시끌벅적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걸으니 더욱 힘이 났다. 연인끼리 와서 걸어가는 올레꾼만 빼면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 같은 홀로 여행자도 눈에 띄어서 그들의 사연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당 올레(해안을 따라 만든 바닷길)를 걸으면서 느낀 점은 밑창이 두꺼운 신발이 필수라는 것이다. 거의 맨발과 다름없는 운동화로 걸으니 발바닥 지압을 쉬지 않고 받는 기분이었고, 다리 힘이 남아있지만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다. 먼 여행에는 알맞은 신발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인생과 연관시키게 되었다. 무조건 뛰려고 하지 말고 일단 맞는 신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7코스를 지나 8코스 중간 즈음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광활한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에서 힘을 얻는다는 말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이번 여행의 올레길 여행은 8코스 중간 지점에서 끝났다. 버스를 타고 12코스 근처의 숙소로 이동했지만 다음날은 도저히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은 한림공원이나 협재 해수욕장 같은 유명 관광지를 천천히 둘러봤다. 하지만 유료 입장임에도 올레길에서 받은 감동이나 희열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과욕과 준비 미비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제주 올레길은 내게 추억을 주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이후 대학원 합격 소식이 들려와 지금은 입학 준비에 한창 들떠서 살고 있다. 남은 한 해를 열심히 살다 겨울 즈음에 다시 한 번 올레길과 조우해야겠다. 이번엔 천천히, 올레길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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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08. 12. 20. 16:22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 얘기는 술자리에 빠질 수 없는 화제 거리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소신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하지만 사람들의 하는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대부분 “어디서 봤는데” 내지는 “어디서 들었는데”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디’의 근원지는 당연하게도 신문, 방송으로 대표되는 ‘언론’이다. 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생각에 끼치는 언론의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 ‘언론’들이 항상 진실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의 선거 개입을 규제하는 공직선거법의 조항은 언론의 거대한 영향력에 대한 우려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언론이 정치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이제 언론은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어떤 정치인도 언론과 적대적 관계에 있어서는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없다. 권력의 최정점이었던 대통령의 지위가 언론과의 불화로 인해 ‘지나가는 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이를 증명한다. 또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언론이다. 이 둘 사이의 공생관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의 ‘언론의 중립성’을 논하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대다수의 신문사들은 특정 당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고, 일부 신문사는 특정 당의 당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특정 인물, 당을 부각시키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무색할 정도다. 차라리 미국처럼 언론의 선거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이는 상당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신문에서 보는 사실은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한 신문이 특정 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알고 있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신문시장의 75%를 보수적인 태도와 특정 당에 대한 지지를 보이는 신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도 같은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각 당을 지지하는 신문사들의 시장에 대한 장악력이 비슷하다면 가능하겠지만, 정보의 편중성을 고려했을 때 언론의 선거개입은 위험하다.

 

또한, 언론의 특정 당, 후보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허용할 경우 ‘권․언 유착’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대선을 앞둔 시기에는 차기 정권에 유력한 후보와 당에 대한 ‘줄서기’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현 제도 하에서도 ‘줄서기’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용인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결국 언론은 중립적일 수 없지만 중립적이어야만 하고, 이는 제도로서 해결해야 한다. 보다 엄격한 선거법의 개졍을 통해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여야 할 것이다. 신문의 각 정당에 대한 기사에 있어서, 지면 수에 대한 규정을 둔다거나, 방송의 경우 할애하는 꼭지에 제한을 두는 것이 한 예이다. 특정 당이나 후보에 편중되지 않는 보도를 법으로 규정해 놓는다면 기계적인 중립이나마 지켜질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과 선택이 될 것이다.

 

선거제도에 있어 유권자에게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언론의 당파성으로 인해 그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문제는 유권자의 성숙한 의식과 냉철한 판단 능력으로 귀착된다. 사람들은 매일 24시간 언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지만, 그 정보의 편중성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다양한 언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려는 유권자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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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08. 12. 20. 16:20

최근 한국 드라마를 보면 '불륜'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불륜을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도 등장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쓰이는 소재는 그 사회를 보여주는 키워드이다. 사람들이 불륜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다시 불거져 나온 '간통죄' 존폐 논란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미 수차례 존폐, 위헌 공방에서 합헌 결정이 난 것이지만 최근 여성, 진보 단체를 중심으로 다시 폐지 바람이 불고 있다.

 

간통죄는 처음에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1953년 쌍벌주의가 적용된 이후로 간통죄는 부부관계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탈바꿈했다. 1950~60년대에는 남성이 부인 외에 첩을 두는 경우가 많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본처들의 보복 수단으로 작용했다. 간통죄가 간통을 얼마나 예방했는지는 모르지만, 결혼 후 불륜을 규제하는 상징적인 의미로서 존재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간통을 저질렀다는 것은 이미 둘 사이에 애정과 신뢰 관계가 깨졌음을 의미한다. 그 때의 인간관계는 국가가 공권력으로 간섭한다고 해서 복구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정은 법적 규제를 통해서 통제할 수 없고, 간통죄가 부부관계를 유지시키는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성 민우회를 중심으로 간통죄 폐지를 주장한느 세력이 있다. 그들 주장의 핵심 근거는 간통죄가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옥죄는 형벌이라는 것이다. 남성, 여성에게 모두 평등하게 적용되는 쌍벌주의가 적용된 이후,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평등하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여성이 경제적 능력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혼 소송 후에 고소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셩이 남편의 간통을 알고도 참을 수 밖에 없는 형편에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우위에 있는 남성들은 간통죄 고소의 선택이 더 수월할 것이다.

 

간통죄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큰 의미는 아마도 가정의 유지, 존속일 것이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가족에 의존하는 정도가 큰 한국 사회읭 정서에서는 더욱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하지만 간통죄는 이혼 소송 후, 즉 가정이 파괴된 이후에야 발동되는 형벌로서 가정의 유지보다 해체에 기여하는 면이 크다. 이혼 후의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지워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는 손해배상 청구 같은 다른 제도로 이어나갈 수 있다.

 

결혼은 옛부터 인륜지대사라 하여 평생 유지하는 것을 담보로 했다. 하지만 결혼 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은 영화나 소설등의 작품이 나오고 있다.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과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것일게다. 실제로 젊은 층은 간통제 폐지에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 후에도 개인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의견 표출인 것이다. 물론 성관계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문란한 사회가 되서는 안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에서 그들이 서로간의 애정과 신뢰 관계를 두텁게 하는 일이다. 형벌이 두렵다고 해서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소박한 작문2008. 12. 20. 16:18
"모두가 '예'라고 외칠 때 홀로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 한 기업의 광고에 나왔던 현대 사회 인재상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런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웠던 때가 많았다. 기독교가 지배적 영향을 미쳤던 서양 중세 사회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한국의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누구든 왕을 모욕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온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부터이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가 실은 민주주의 사회의 특권인 것이다.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근대의 제도로써 만들어질 때, 사상가들은 필수권리로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다. 상호 의견 교환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 표현의 자유는 사회 체계의 전제 조건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합의 과정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독재권력을 추방하기도 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대안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한국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무한정 누릴 수는 없다.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 침해나 인격 모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만큼 개인의 인격권 존중도 중요하다. 따라서 두 가치가 충돌하지 않도록 적절한 선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에선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친고죄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제 3자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어느 선에서 제한할 것인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을 더욱 뜨거워졌다. 익명성을 이용해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무한정 발산했고, 이른바 '악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이 악플때문이라고 밝혀지자 인터넷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규제는 실생활에서의 그것보다 더 엄격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통로인 인터넷을 원천봉쇄할 우려가 있다. 극히 일부인 악플을 방지하려다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앗아갈 수도 있다. 더욱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방안은 친고죄를 적용하지 않아 공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할 위험성이 크다.

한국에서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을 잘못하면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곤 했다. 그와 비교할 때 현재 인터넷 상으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 건전한 민주주의가 탄생한다. 물론 개인 인격에 대한 모독은 제재가 필요하지만 건전한 비판과 악의적 비난을 구분하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일부 악성 댓글을 가지고 전체 인터넷 소통에 제약을 가하는 제도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어떤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도 그 사람이 의견을 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소박한 작문2008. 12. 20. 15:58

일본에서 「파견의 품격」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파견직 여자 사원이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나가는 내용이다. 극 속의 여자 주인공은 수십 개의 자격증과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 우먼’이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3개월 계약직임에도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반면 정규직을 꿈꾸며 파견직으로 입사한 여사원이 있다. 그녀는 늘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만 차별대우를 받다가 결국 기간만료로 퇴사하게 된다.

 

드라마는 여 주인공과 나머지 파견직 인물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일본 내 비정규직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비정규직의 수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이나 기본적 권리 측면에서 문제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3월 현재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53.6%인 858만 명에 이른다. 쉽게 말해 한국 노동자의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라는 소리다. 여성의 경우만 보자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같은 통계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415만 명으로 세 명 중 두 명꼴이다. 일본 드라마에 등장했던 여자 주인공 같은 ‘알파걸’은 도무지 등장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 하지만 세계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평균 30%대의 비정규직 비율을 훨씬 웃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장기적으로 경제 구조가 취약해질 것이다. 비정규직의 비율을 낮출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용직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다는 데서도 발견된다. 유럽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가 상용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정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작년 우리은행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안으로 ‘중규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 변종 비정규직이 고착화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교하여 임금부터 각종 복지혜택에 이르기까지 갖은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그의 저서에서 20대의 95%가 비정규직이 될 것을 예언하고 이러한 경제구조가 결국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절망에 빠뜨릴 것을 경고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 기업인들은 저마다 올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재의 일자리 사정은 그리 좋아보이질 않는다. 500여일을 넘게 싸워온 KTX 여승무원들이 고공투쟁을 하고 있고, 1000일 넘게 싸워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단식 투쟁 끝에 병원에 실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해진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를 남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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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08. 12. 20. 15:58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가리켜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했다. 민족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구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족을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규정한다. 반면,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민족보다 종교에 의해서 하나로 단결하는 종교공동체적 성격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명제도 거짓이 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들이 단일민족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상당한 애족심을 갖고 있다. 요즘 세계화의 추세에 맞춰 민족주의를 지양하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스포츠 경기 등에서 나타나는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는 여전히 강하다. 그렇다면 민족주의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때로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야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또는 피식민지 국가가 독립을 달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한 학자는 민족주의를 ‘야누스의 얼굴’이라 부르기도 했다. 자명한 것은 민족주의가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응집력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민족을 부정하고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주창하던 공산주의도 결국 민족주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전 세계 공산국가들이 몰락한 상태에서 결국 살아남은 것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 즉 주체사상을 확립했던 북한이었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세계 역사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한편, 민족주의가 갖는 응집력과 역동성이 지배층에 의해 악용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가 독일 군중의 민족주의를 자극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례이다. 자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족주의는 타민족에 대한 지배 욕구로 비뚤어졌고, 그 결과 수천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또한, 민족이라는 구실로 민족 내부의 계급 간 불평등과 갈등이 은폐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정권 시절, 민족의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정당화되어지곤 했다. 작년 정부에서 만든 한․미 FTA 홍보 광고도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인 걸 보면, 민족주의는 권력층에게 매력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세계열강들에 의해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다. 분단된 한국의 지상과제가 통일이라는 것은 현재도 유효하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경제적 실익 등 그 어떤 요인도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추진력에 필적하지 못한다. 민족주의는 통일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것이다. 또한, 주변 열강들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도 민족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중국이나 일본와의 영토, 역사를 둘러싼 분쟁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 민족 단결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는 부정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앞으로 미래에는 민족주의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21세기에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다자간 경제협력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양자 간 협상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는 심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살아남기 위해 민족주의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인 단점을 보완한 개방적인 민족주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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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08. 12. 20. 15:57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다. 공정택 교육감은 지난 7월 31일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된 이후 서울시의 교육정책을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다. 그는 먼저 국제중학교의 설립을 추진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청심 국제중학교 외에 2곳을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에 개교할 예정이라니 정말 놀라운 추진력이다. 또한, 2010년부터 고교선택제를 도입해 서울 지역 학생들이 학교를 골라서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월성 교육과 경쟁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엔 상당한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수월성 교육은 새 교육정책의 키워드이다. 그는 지난 10년간 교육평준화 때문에 학생들의 실력이 저하되었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인재를 모아 육성하는 것만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새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살려주는가 하는 것이다. 국제중학교의 선발기준은 영어구사능력과 경시대회 실적, 그리고 학교 성적이다. 학생들은 적성에 관계없이 모두 정해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게다가 영어구사능력은 개인의 실력보다는 부모의 경제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려서부터 경쟁의 조건에서 불리함을 경험하는 것이 수월성 교육이라면 그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동안 학군에 따라 학교 수준의 불균형이 초래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재는 학교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좌우되는 상황이 아니다. 그보다는 교육열이 높은 목동, 강남 등지에서 값비싼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 선택권이 서울 지역 내 불균형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학교 간 서열화를 불러와 소외된 학교의 공동화를 초래하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과도한 입시경쟁을 대학교 입시에서 고등학교 입시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러 문제점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졸속으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중학교 전환을 준비하는 학교들은 아직 제대로 된 여건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당장 내년 3월 개교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학교들은 국제중학교에 채택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과연 내실 있는 운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또한 고교선택제가 시행될 경우 중요한 것은 서울시가 학교 간 수준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소외된 학교에 대한 전혀 지원 정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부작용이야 어쨌든 무조건 추진하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간에는 공정택 교육감이 자신을 뽑아준 강남의 학부모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는 비난이 나온다.

 

교육에 있어 경쟁의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의 최고 가치는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형평성을 위배하면서까지 수월성을 추구한다면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예전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이 계층 간의 이동을 위한 통로로 이용되어 왔지만, 현재의 교육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무한 경쟁을 외치기에 앞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정택 교육감은 ‘부자만을 위한 교육’을 전면 재검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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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작문2008. 12. 20. 15:17
   ‘퍼주기’ 망상 버리고 ‘농어민 살리기’ 묘안 마련해야

지난 4월 2일, 14개월여의 진통 끝에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정부는 농업분야의 경제적 타격을 대비해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간 정부의 지원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해 농어촌의 미래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3월 27일 사설 <언제까지 농어민 빚 대신 갚아줘야 하나>는 농어촌의 현실은 외면한 채, 농어촌에 대한 지원을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이 사설을 ‘3월의 나쁜 사설(칼럼)’로 선정했다.

이 사설은 전반적으로 지나친 악의성이 엿보인다.
먼저 시기적 악의성이다. 한미FTA 최종 타결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3월 27일은 반 FTA 범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수많은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데모만 하면 농어촌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 되면 안 된다”는 주장에서는 반 FTA 집회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농어민들이 마치 데모만 하면서 국가에 손실이 되는 집단인 양 호도하고 있다.

제목과 표현상의 악의성도 문제다. 사설에서는 농가부채 문제를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국민 간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언제까지 농어민 빚 대신 갚아줘야 하나”라는 제목은 농어민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 외에 “한 해에 1조원씩 떼이면서”, “70조원을 쏟아 부었다”, “돈벼락을 맞은 경우”, “정부에 손 벌리는”, “이런 뒷돈까지 대야 하는 국민만 죽을 맛이다” 등 의도적으로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은 농민을 ‘염치없고 대책 없이 빚만 내고 나몰라하는 파렴치한’으로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마치 농어민의 빚 때문에 낭비되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또 사설은 “농어민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도시 빈민층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적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며 빈곤을 대립적으로 비교하는 우를 범했다. 농어민이나 도시 빈민층 등은 동등한 국민으로써 국가로부터 사회적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지원은 상관관계가 아닌, 양측 모두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설에서는 도시 빈민층에게 지원될 돈이 농어민에게 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등 이 두 계층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악의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한편 사설은 농어민 대출자금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까지도 농민에게 전가하고 있다. 사설은 농민이 농·수협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을 선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이 대신 갚아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서, 그 해결 방안을 “농어민 대출 때 현장 확인과 신용도 점검을 철저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설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농협 직원이나 공무원이 끼어들어 엉뚱한 데 대출해주고, 뒷돈을 챙기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과정 정비나 비리 단속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책임까지 농어민에게 돌리는 것도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이 사설은 농어민들이 왜 빚더미에 앉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구조적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사설에서는 “정부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농어촌에 7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농어민은 빚더미에 앉아 있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빚을 탕감해주는 악순환이 이어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상지대 김성훈 총장(농업전문가)은 프레시안 <박인규의 집중인터뷰>(4/11)에서 매 정권마다 농가피해를 위한 지원책을 약속했지만 우루과이라운드 이후로 농업분야에 새롭게 지원되거나 투자된 것이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전체예산 대비 농업 비중은 우루과이라운드 전에7.5%에서 현 노무현 정부 들어 5.5%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또 10년 전에 비해 농가 부채는 거의 30배 높아져서, 1인당 농가 부채와 농가 소득이 똑같으며, 농가 소득은 도시 근로자 소득의 75% 수준으로 더 나빠졌다고 평가했다.

FTA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농어촌이 입을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그 원인을 농어업의 낮은 경쟁력과 비효율성 때문이라며 영세 농어민들의 몰락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농어촌을 살리는 것은 농어민 스스로 경쟁력을 살리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농어촌과 소비자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농어촌 살리기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정부는 지원정책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더 나은 지원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한다. 특히 언론은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적 희생자였던 농민을 오히려 경제발전 저하의 볼모로 폄하하는 태도를 버리고 농어촌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묘안 마련 등 좀 더 생산적인 여론 형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정리·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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