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작문2008. 12. 20. 15:17
   ‘퍼주기’ 망상 버리고 ‘농어민 살리기’ 묘안 마련해야

지난 4월 2일, 14개월여의 진통 끝에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정부는 농업분야의 경제적 타격을 대비해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간 정부의 지원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해 농어촌의 미래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3월 27일 사설 <언제까지 농어민 빚 대신 갚아줘야 하나>는 농어촌의 현실은 외면한 채, 농어촌에 대한 지원을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이 사설을 ‘3월의 나쁜 사설(칼럼)’로 선정했다.

이 사설은 전반적으로 지나친 악의성이 엿보인다.
먼저 시기적 악의성이다. 한미FTA 최종 타결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3월 27일은 반 FTA 범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수많은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데모만 하면 농어촌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 되면 안 된다”는 주장에서는 반 FTA 집회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농어민들이 마치 데모만 하면서 국가에 손실이 되는 집단인 양 호도하고 있다.

제목과 표현상의 악의성도 문제다. 사설에서는 농가부채 문제를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국민 간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언제까지 농어민 빚 대신 갚아줘야 하나”라는 제목은 농어민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 외에 “한 해에 1조원씩 떼이면서”, “70조원을 쏟아 부었다”, “돈벼락을 맞은 경우”, “정부에 손 벌리는”, “이런 뒷돈까지 대야 하는 국민만 죽을 맛이다” 등 의도적으로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은 농민을 ‘염치없고 대책 없이 빚만 내고 나몰라하는 파렴치한’으로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마치 농어민의 빚 때문에 낭비되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또 사설은 “농어민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도시 빈민층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적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며 빈곤을 대립적으로 비교하는 우를 범했다. 농어민이나 도시 빈민층 등은 동등한 국민으로써 국가로부터 사회적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지원은 상관관계가 아닌, 양측 모두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설에서는 도시 빈민층에게 지원될 돈이 농어민에게 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등 이 두 계층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악의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한편 사설은 농어민 대출자금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까지도 농민에게 전가하고 있다. 사설은 농민이 농·수협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을 선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이 대신 갚아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서, 그 해결 방안을 “농어민 대출 때 현장 확인과 신용도 점검을 철저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설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농협 직원이나 공무원이 끼어들어 엉뚱한 데 대출해주고, 뒷돈을 챙기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과정 정비나 비리 단속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책임까지 농어민에게 돌리는 것도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이 사설은 농어민들이 왜 빚더미에 앉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구조적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사설에서는 “정부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농어촌에 7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농어민은 빚더미에 앉아 있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빚을 탕감해주는 악순환이 이어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상지대 김성훈 총장(농업전문가)은 프레시안 <박인규의 집중인터뷰>(4/11)에서 매 정권마다 농가피해를 위한 지원책을 약속했지만 우루과이라운드 이후로 농업분야에 새롭게 지원되거나 투자된 것이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전체예산 대비 농업 비중은 우루과이라운드 전에7.5%에서 현 노무현 정부 들어 5.5%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또 10년 전에 비해 농가 부채는 거의 30배 높아져서, 1인당 농가 부채와 농가 소득이 똑같으며, 농가 소득은 도시 근로자 소득의 75% 수준으로 더 나빠졌다고 평가했다.

FTA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농어촌이 입을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그 원인을 농어업의 낮은 경쟁력과 비효율성 때문이라며 영세 농어민들의 몰락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농어촌을 살리는 것은 농어민 스스로 경쟁력을 살리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농어촌과 소비자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농어촌 살리기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정부는 지원정책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더 나은 지원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한다. 특히 언론은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적 희생자였던 농민을 오히려 경제발전 저하의 볼모로 폄하하는 태도를 버리고 농어촌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묘안 마련 등 좀 더 생산적인 여론 형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정리·이혁진)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