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2011. 2. 28. 06:59

때론 자신이 생각했던 정답 A 가 다른 사람들에겐 오답이고, 그들이 말하는 정답 B를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교 때 활동했던 학회에서 명칭변경을 놓고 벌어진 여러 논쟁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영문과 내에서 활동했던 "통일학회 노둣돌"은 1992년에 생겨난 모임이다. 그 당시 학생회에서 학생운동을 전개해나가던 사람들이 몸으로만이 아닌 머리로도 운동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남북 분단 상황에 있다고 믿고, 통일운동이 모든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물론 내가 들어왔던 2001년 당시의 상황은 1990년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구성원들의 생각도 역시 그때와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미나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남북관계였고, 통일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회의 성격은 변질되기 시작했고, 통일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점차 약화되었다. 2007년부터 세미나의 주요 내용은 통일 문제가 아닌 시사 문제로 바뀌고, 통일학회의 이름과 세미나의 내용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구성원들이 생겨났다.

"통일"학회 노둣돌이라는 이름에서 "통일"이라는 명칭 대신에 다른 것을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후배들 사이에서 있었고, 나는 2009년부터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08,09,10학번의 입장에서 01학번 선배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선배의 허락같이 느껴졌을 터이다. 난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입장을 밝혔지만, 학번 차이가 주는 말의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2010년말,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학회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었다. 마침내 학회 새명칭 후보까지 정해져, 1990년대 학번 선배들에게까지 문자로 투표하라는 공지가 전해지고 나서야, 선배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선배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논의가 1달넘게 이어졌다. 단체메일을 계속해서 주고 받으며, 각자 학회명칭이 갖는 의미와 변경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나는 졸지에 후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선배들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후배들을 변호하면서 꽤나 진땀빼는 시간을 보냈다. 마치 내가 선배들 몰래 후배들을 선동해서 명칭을 바꾸려고 한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에,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도 힘들었다.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절차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학회명칭과 함께 세미나 내용도 체계적으로 잘 바꾸어나가라고 독려했다.

졸업생 선배들과 재학생 후배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위치가 되어버린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생각보다 커진 학회명칭 변경 논의 때문에 적잖이 신경을 써야 했고, 마침내 지난 2월 마지막주 토요일 선후배 전체가 만나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주최했다. 그동안 너무 서로간의 소통이 없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92학번 선배님부터 10학번 후배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하자는 취지였다.

나는 졸업생 선배들이 현재 노둣돌의 운영과 성격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있고, 중요한 것은 현재 구성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노둣돌에 관련한 모든 결정은 현재 구성원들 사이에서 내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논의과정을 통해 조직 전체의 정체성과 관련된 결정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찌됐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후배들 사이에 한번 모일 수 있게 된 것을 대부분 뜻깊게 생각했고, 앞으로 매년 홈커밍데이같은 큰 행사에 선배들이 꾸준히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 노둣돌의 성격이 처음 생겨날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현재 시점에서 어쩌면 더 크게 벌어질 균열과 단절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직운영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서 내가 생각했던 A와 일부 선배들이 생각했던 B가 달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어떤 형과 크지 않은 감정다툼이 있기도 했고, 내가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반성도 많이 했다. 앞으로 어떤 조직에서 논쟁이 벌어진다고 할 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