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겸영에 대하여
이탈리아의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1991년 정계에 입문했다. 보통의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정치 의사를 처음 밝히는데 반해, 그는 자신의 영상을 제작해 방송에 내보내는 파격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의 전략은 효과적이었고, 그 덕분에 그는 현재까지 3번 총리직에 오르며 막강한 정치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그의 뒤에 그가 소유한 각종 매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었다. 신문․방송의 겸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방겸영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한국판 베를루스코니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신문법에 의하면 현재 신문사는 종합편성 방송 채널을 소유할 수 없다. 때문에 케이블 TV 등 70여 개 계열사를 보유한 중앙일보도 종합편성 방송은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규칙은 방송법에서 다시 한 번 명시되어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여론을 장악할 수 있는 소수 거대 언론의 출현을 막자는데 있다. 특정한 정파성을 띈 언론사의 보도가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여론이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약 75%를 보수적인 논조의 거대 신문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 하에서는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신방겸영이 허용된다면 이른바 ‘조중동 방송’이 생겨날 것을 우려한다. 반면 이를 추진하는 정부, 여당에서는 공영방송이 민영화되더라도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송의 규모로 볼 때 특정 언론사가 독점적인 지분을 소유할 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일반 대기업과 언론사가 함께 방송의 지분을 소유했을 때, 언론에 무지한 대기업에서 편집권을 언론사에 전면 위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특정 언론사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방송 편성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그 주체는 보수 거대 언론인 ‘조중동’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신방겸영을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현 한국 방송체계의 비경쟁적 구조이다. 그들은 다공영 일민영 체제의 현 구조가 경쟁을 막고,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영화 이후 언론사들의 경쟁을 통해 방송의 선진화를 이루자고 한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민영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민영방송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담당했던 공익성의 기능을 온전히 하기 힘들다. 주요 수입원인 광고주들로부터의 압박도 심해져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모든 매체는 한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방송, 신문, 잡지 영화 할 것 없이 모두 베를루스코니의 뜻에 따라 돌아간다. 언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 쪽으로 여론이 치우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여론은 신문시장의 왜곡된 구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신방겸영보다 앞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는 신문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특정 언론사에 의해 독접되는 구조를 개선한 이후에야 신방겸영 문제도 논의해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