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2010. 3. 15. 00:32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해야 한다'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집안의 장손으로서 나에게 기대가 컸던 할아버지는, 네가 몰락한 가문의 옛 영광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씀을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하셨고, 나머지 식구들도 다 그런 걸 바라는 눈치였다.


4살 때 종아리를 맞으며 천자문을 배우고, 뜻도 모르는 백과사전의 구절을 달달 외어야 했던 것을 견디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의 인생에 익숙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다.


식구들의 기대에 그럭저럭 부응하며 명문이라고 하는 고등학교와 꽤나 상위권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해야 한다 인생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에 대한 깊은 원망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지나치게 반감을 가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예의바르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오히려 반항적이 되어가는 것은 스스로 보기에도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하고 싶다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뒤늦게 꿈틀거렸던 것 같다.


나이 스물아홉을 먹고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어려서부터 나의 생각에 대해 존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넋두리를 했다. 스스로에 대한 핑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버지가 서운한 감정을 보이시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탓을 돌렸다. 며칠 전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기 보다 내가 해야할 것 같은 말을 이야기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였다. 그렇게 나를 교육시킨 집안의 분위기가 원망스러워서였다. 그 날은 그냥 그렇게 감정대로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서운한 표정을 본 후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의 대화가 후회스럽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