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20.04.19 입원
  2. 2011.12.29 내 안의 속물스러움
  3. 2011.02.28 통일학회 노둣돌
  4. 2011.02.15 경쟁사회
  5. 2011.02.06 시간 재테크
  6. 2011.01.11 홍익대 사태에 대한 단상
  7. 2010.03.15 좋은 사람
  8. 2010.03.15 해야한다와 하고싶다
  9. 2010.03.15 대학생, 그리고 20대
  10. 2009.02.16 2월 15일 구직 일기 (1)
일상의 단상2020. 4. 19. 22:20

첫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오늘 입원을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암과의 싸움이다. 은영이와 포옹을 하면서 둘다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 부모님도 장모님도 다 계신 집안에서 맘놓고 울수가 없었지만, 촉촉해진 눈망울을 보니 서로 위로하는 마음이 전달된듯 했다.

나는 나대로 은영이는 은영이대로 잘 버티고 이겨낼 것이다. 미웠던 마음 잠시 뒤로 제쳐두고 내 모든 힘을 다해서 은영이 건강 회복할 때까지 노력하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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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1. 12. 29. 19:52

몇 달전, 페이스북 상에 공개된 나의 프로필 중에서 학력에 관한 사항을 삭제했다. 페이스북 상에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정체성을 학력을 통해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페이스북의 공개 프로필 상에 자신의 학력을 기재하는 것이 꼭 과시용이라 할 수는 없기에, 뭘 그리 유난을 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한국 사회 풍토에서, 나는 선입견 없이 온전히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평가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내가 역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종종 다른 사람의 학력을 궁금해하며, 그에 대한 판단기준 중의 하나로 포함하곤 한다. 열등의식의 발로였는지 몰라도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에는 그 경향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매년 나눠주는 원우회 수첩에 기재된 사람들의 학력을 확인했고, 그 중 학력을 몰랐을 때와 비교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의 학력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럼에도 그것을 떠벌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사람을 대할 때 학력이든, 직업이든 그 사람의 뒷배경을 보고 먼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속물스러운 태도라는 일종의 결벽 증세가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비단 학력에 대한 말과 행동이 아닐지라도 매사에 속물스럽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규정하는 속물스러움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람을 속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사에 노력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꾸미지 않아도 속물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학력 지상주의 풍토를 열렬히 비판하면서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판단기준을 갖고 있고,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그런 것들을 부러워한다. 내안의 속물스러움을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럴 땐 이 사회가 혹은 내가 속한 주변환경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물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얼마전 가수 김창완이 한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 중에, 요즘사회에는 영웅들이 너무 많다고, 사람들은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화려한 이력의 사람들만 쳐다보느라 정작 자기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는데 인색하다는 맥락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결국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만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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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1. 2. 28. 06:59

때론 자신이 생각했던 정답 A 가 다른 사람들에겐 오답이고, 그들이 말하는 정답 B를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교 때 활동했던 학회에서 명칭변경을 놓고 벌어진 여러 논쟁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영문과 내에서 활동했던 "통일학회 노둣돌"은 1992년에 생겨난 모임이다. 그 당시 학생회에서 학생운동을 전개해나가던 사람들이 몸으로만이 아닌 머리로도 운동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남북 분단 상황에 있다고 믿고, 통일운동이 모든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물론 내가 들어왔던 2001년 당시의 상황은 1990년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구성원들의 생각도 역시 그때와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미나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남북관계였고, 통일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회의 성격은 변질되기 시작했고, 통일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점차 약화되었다. 2007년부터 세미나의 주요 내용은 통일 문제가 아닌 시사 문제로 바뀌고, 통일학회의 이름과 세미나의 내용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구성원들이 생겨났다.

"통일"학회 노둣돌이라는 이름에서 "통일"이라는 명칭 대신에 다른 것을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후배들 사이에서 있었고, 나는 2009년부터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08,09,10학번의 입장에서 01학번 선배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선배의 허락같이 느껴졌을 터이다. 난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입장을 밝혔지만, 학번 차이가 주는 말의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2010년말,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학회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었다. 마침내 학회 새명칭 후보까지 정해져, 1990년대 학번 선배들에게까지 문자로 투표하라는 공지가 전해지고 나서야, 선배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선배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논의가 1달넘게 이어졌다. 단체메일을 계속해서 주고 받으며, 각자 학회명칭이 갖는 의미와 변경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나는 졸지에 후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선배들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후배들을 변호하면서 꽤나 진땀빼는 시간을 보냈다. 마치 내가 선배들 몰래 후배들을 선동해서 명칭을 바꾸려고 한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에,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도 힘들었다.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절차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학회명칭과 함께 세미나 내용도 체계적으로 잘 바꾸어나가라고 독려했다.

졸업생 선배들과 재학생 후배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위치가 되어버린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생각보다 커진 학회명칭 변경 논의 때문에 적잖이 신경을 써야 했고, 마침내 지난 2월 마지막주 토요일 선후배 전체가 만나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주최했다. 그동안 너무 서로간의 소통이 없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92학번 선배님부터 10학번 후배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하자는 취지였다.

나는 졸업생 선배들이 현재 노둣돌의 운영과 성격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있고, 중요한 것은 현재 구성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노둣돌에 관련한 모든 결정은 현재 구성원들 사이에서 내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논의과정을 통해 조직 전체의 정체성과 관련된 결정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찌됐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후배들 사이에 한번 모일 수 있게 된 것을 대부분 뜻깊게 생각했고, 앞으로 매년 홈커밍데이같은 큰 행사에 선배들이 꾸준히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 노둣돌의 성격이 처음 생겨날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현재 시점에서 어쩌면 더 크게 벌어질 균열과 단절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직운영의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서 내가 생각했던 A와 일부 선배들이 생각했던 B가 달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어떤 형과 크지 않은 감정다툼이 있기도 했고, 내가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반성도 많이 했다. 앞으로 어떤 조직에서 논쟁이 벌어진다고 할 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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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1. 2. 15. 01:07

언제부턴가 지하철 역에 내려서 집에 걸어가는 길에 두 곳의 빵집이 나란히 자리잡게 되었다.
한 곳은 파리 바게O, 다른 곳은 뚜레주O.
분명 두 군데 모두 영업시간이 오후 11시까지라고 써있었는데도,
밤 12시가 다 되어서 들어갈 때마다 두 곳의 가게는 모두 불이 환하게 켜있었다.
그 중 파리 바게O가 항상 새벽 1시까지 연장영업을 하면서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내 기억엔 뚜레주O 보다 늦게 들어선 가게인데, 손님은 항상 더 많아 보였다.

며칠 전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는데, 뚜레주O 가게 불이 꺼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텅빈 가게의 유리창에는 곧 맛있는 닭집이 들어온다는 공고문만 휑하니 있었다.

내 기억엔 창업한지 1년도 채 안된 가게인 것 같은데,
결국은 제 살을 깎아먹는 살인적인 경쟁에 못이겨 문을 닫은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서로를 파멸로 몰고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쟁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경쟁 없는 사회란 존재할 수 없겠지만,
정글과 다름없는 현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무한경쟁만을 강조하면 안될 것 같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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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1. 2. 6. 22:52

욕심 많고, 또한 조급한 성격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늘 힘들었다.
하지도 못할 양의 계획을 세워놓고 벅차게 진행하다가
며칠 못가서 조급한 마음에 못이겨 하나씩 계획을 접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면 결국 제대로 해나가는 일은 하나도 없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2011년 역시 버거운 계획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한 번에 여러가지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조급함은 버릴 수 없는 성격일지라도,
이젠 그 중에서 몇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현명함은 발휘해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시간 재테크를 하면서 실속있게 살아가야겠다.

돈을 버는 친구들 말로는 돈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고정적으로 적금 혹은 펀드 등에 나가는 돈을 많이 만들어놓는 것이라는데,
여기서 힌트를 얻어 매일 주어지는 24시간도 그렇게 사용해봐야겠다.

매일 6시부터 6시30분까지 EBS영어 방송 청취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수영 연습
매일 통학하는 2시간 여 동안 신문 정독
매일 최소 5시간 전공 공부
매일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근력 운동

이렇게 고정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분야를 만들어 놓는다면,
그 외의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저 고정적인 스케줄을 충실히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이런저런 핑계를 댈 나이도 아니고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갈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돈을 재테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만큼, 시간이라도 재테크하면서 살아가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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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1. 1. 11. 09:53

#1. 2005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머물고 있을 때, 워킹(working)으로 청소 업무를 3개월 정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이어 업체의 사무실 청소를 한국 청소업체가 대신 맡아서 해주는,
전형적인 도급 형태의 비정규직 업무였지만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다.
외국에서 오히려 한국사람들이 한국인을 착취한다는 말처럼, 그 한국 업주도 악덕했고, 근무조건도 열악했다.
우리의 세금을 미리 빼고 준다면서 시중보다 훨씬 싼 보수를 지급했고, 시간에 비해 과중한 업무를 시켰다.
철야로 대형마트 청소를 할 경우에도 보수는 주간근무와 똑같이 지급했다.
그럼에도 미화 노동자로 고용된 유학생들은 군말없이 일해야만 했고, 나는 결국 일을 잘 못했다며 짤렸다.
당시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다 짤린 그 곳이 나의 직장이었다면 나는 그토록 순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2. 용산 철거민 시위를 무리하게 진압하다 생긴 사고에 대해서 한동안 거리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서강대 학생들 중 촛불집회에 나가려는 무리가 자신들의 모임 이름에 "서강"이란 단어를 넣으려고 했고,
그들은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며칠동안 사람들의 숱한 반대를 받았다.
"니네가 정치적 성향이 있으면 니들끼리 나가면 되지, 왜 우리에게 피해를 주냐.. 서강대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니네들이 책임질거냐.. 우리는 서강이란 이름을 니네한테 허락한 적이 없다.." 뭐 이런 식의 얘기였다.
촛불집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학교의 이미지를 실추할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실망스러웠고,
서강이란 브랜드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위권 대학이라는 것도 하나의 기득권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또한 실망스러웠다.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연계 등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3. 학부시절 교내 아르바이트를 1년 이상 하면서 학교를 청소하시는 미화 노동자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가끔 우리 어머니께서 저런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일하다보면 아주머니들이 바뀌시거나, 다른 건물로 배치받으신다며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분들에게는 밥줄이 달린 직장인데 인사이동이 너무 쉽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용역업체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나역시 그들에게 간섭하는 것이 오만하다고 느껴졌다.

#4. 홍대 학생회장이 얼마전 계약해지 된 홍대 청소 아주머니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을 봤다. 비운동권 학생회를 표방하며 당선이 되었으니 그의 정치적 부담에 대해서는 이해못할바가 아니다. 하지만 현 사태에서 외부 운동세력과 내부 구성원을 구분짓는 태도가 뭐그리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도 아주머니들을 응원하고 있다며 우리가 돕겠다고 하는데, 그 대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가 시급한 아주머니들에게는 외부 운동세력 구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학습권과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간의 충돌에 대해서 토론을 해보고, 부당한 계약해지를 하루빨리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배려이자 한국의 대학생으로서 살아가는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용역업체 노동자로서 잠깐 일해보기도 했지만 사회적 약자라는 위치에 누구나 속할 수 있고, 그 위치에서 그들의 권리를 지키며 살아가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멀리 봤을 때에는 그들의 권리를 위하는 길이 나의 권리를 위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한치 앞 이득을 생각하기 보다 더 멀리, 더 넓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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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0. 3. 15. 00:33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며,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할 수도 있고,

글을 읽고 난 후 기분이 좋아지게 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뛰어난 지식과 화려한 문장력과 탁월한 구성력보다도

좋은 글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은

글쓰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자.

애써 꾸미지 않아도 글에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그런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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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0. 3. 15. 00:32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해야 한다'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집안의 장손으로서 나에게 기대가 컸던 할아버지는, 네가 몰락한 가문의 옛 영광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씀을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하셨고, 나머지 식구들도 다 그런 걸 바라는 눈치였다.


4살 때 종아리를 맞으며 천자문을 배우고, 뜻도 모르는 백과사전의 구절을 달달 외어야 했던 것을 견디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의 인생에 익숙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다.


식구들의 기대에 그럭저럭 부응하며 명문이라고 하는 고등학교와 꽤나 상위권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해야 한다 인생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에 대한 깊은 원망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지나치게 반감을 가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예의바르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오히려 반항적이 되어가는 것은 스스로 보기에도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하고 싶다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뒤늦게 꿈틀거렸던 것 같다.


나이 스물아홉을 먹고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어려서부터 나의 생각에 대해 존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넋두리를 했다. 스스로에 대한 핑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버지가 서운한 감정을 보이시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탓을 돌렸다. 며칠 전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기 보다 내가 해야할 것 같은 말을 이야기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였다. 그렇게 나를 교육시킨 집안의 분위기가 원망스러워서였다. 그 날은 그냥 그렇게 감정대로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서운한 표정을 본 후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의 대화가 후회스럽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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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10. 3. 15. 00:31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이 앞에 처음 "2"가 붙기 시작했을 때, 나는 대학생활에 대해서, 나의 20대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을 뿐이고, 내가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차후 진로에 유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의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20대를 살아가는 기준이 생겨났다.


대학생의 특권은 다른 계층보다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의 의무는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할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20대의 과제는 자신, 그리고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30대 이후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학생, 그리고 20대의 축복은 어떤 것을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준에 날 비추어보면서 그동안 나는 대체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 끝자락의 나는 지난 8년이 향후 내 인생을 위한 초석을 쌓았던 시간이라고 믿고 있다.


얼마전 대학교 친구에게 내가 너무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발끈했지만, 마땅한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대학생, 그리고 20대의 당위를 강조하던 시간동안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보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의 20대를 20년 후에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잘 되어 있으면 좋게, 못 되어 있으면 나쁘게 평가하는게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40대를 살아가고 있더라도 내가 20대에 했던 선택을 부정하면서 살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이상과 가치관을 현실에 반영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이고, 현실적인 감각을 갖추는 일이다. 나의 20대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20대 마지막 1년에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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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09. 2. 16. 01:18
언제부턴가 내게 주말 휴식은 사치일뿐이야,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주말과 평일의 뚜렷한 구분이 없어져버린 지 오래다.
(학생신분을 벗어나기 전부터 이미 주말은 못했던 일을 마저 하는 시간으로 존재했다.)

지난 이틀도 뭐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제는 남들 초콜릿 주고 받는 시간에,
학교에서 언론사 스터디하느라, 끝나고 친구가 알바하는 독서실가서 같이 공부하느라 바빴고,
오늘은 이력서용 증명사진 찍고, 이력서 쓰고,
내일 있을 시사상식 발표준비하느라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참 빠르다.
뭐 한가지 일이라도 할라치면 반나절은 금새 가버린다.
어쩌다 TV에 시선이 고정되면 두 세시간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고정적으로 보는 TV 프로그램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늘 시간이 날 쫓아오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문득 남들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쁜 것처럼 살면서 막상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주말을 주말답게 쉬지도, 놀지도 못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뭔가 확실하게 끝낸 일도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신나게 놀았더라면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을텐데, 지금 난 지난 이틀이 아쉽다.

언제나 치열하게,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에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많이 후회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늘 현재를 생각해보면 바쁘고, 해야할 일들이 버겁다.
이건 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는 형님이 해주신 말씀.. 오늘 태어나 오늘 죽는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라.
너무 바쁘게 살지도, 너무 게으르게 살지도 말고, 오늘 하루도 열정적으로 살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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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참... 저도 늘 같은 고민입니다..

    2009.02.26 20:2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