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4

문득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볼 때마다,

아름다운 기억을 먼저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 "사랑해"라는 말을 했었던 사람,

여고생 마냥 말도 못하게 예민했던 내 고등학교 2,3학년 시절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

함께 했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지 않아도,

내 고등학교 시절을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녀에게

이따금씩 고마워하곤 한다.

 

그녀와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미니홈피주소까지 소통가능한 모든 루트가 단절되었다.

그녀와 연락을 끊은 건 나였다.

2007년 봄 그녀를 2년여만에 만난 다음 날부터였다.

그녀를 만나러 갈 때부터 그날이 그녀와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를 그냥 추억 속에 간직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01년 5월에 헤어지고, 근 6년간을 친구 사이로 지냈다.

그렇게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는데,

가끔씩 내가 대뜸 과거 얘기를 꺼내서 그녀에게 연거푸 상처를 주곤 했었다.

무엇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도 몰랐던 나는 정말 뭣도 모르고 어리기만 했던 것 같다.

가끔씩 내가 저지르는 '입방정' 때문에 우리는 항상 '얇은 벽'을 사이에 둔 조금 불편한 사이로 지냈다.

 

내가 군대를 가고, 제대를 하고, 그사이 그녀는 취직을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그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예전에 느꼈던 따뜻함, 여린 마음보다는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하면서 가끔씩 아프게 다가오는 그녀의 말은,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주었던 상처, 헤어지고 난 후에 주었던 상처를 그대로 되받고 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더이상 직장인이 된 그녀는 내 기억속의 그녀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좋았던 기억마저 다 더럽혀질 것 같은 두려움에 그녀를 추억 속에만 남겨두기로 했다.

 

얼마전 또 한 사람을 떠나 보냈다.

1년이 좀 못되게 함께 지냈던 사람이다.

이놈의 입방정은 나이가 먹어도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나보다.

한번 상처주면 될 것을 두번 세번 상처 줘가며 관계를 끝내버렸다.

그러기는 싫지만 그녀 역시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내가 그녀 기억 속의 내 모습, 그녀 모습을 온통 더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물일곱살,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별하는 연습 한참 더 해야겠다고 되뇌인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