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2010. 9. 10. 01:43

한일 강제병합이 체결된 지 꼭 100년이 되었다. 국민에게 있어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오죽하면 사내가 태어나서 세 번 울 수 있는 기회 중의 하나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뼈아픈 역사일수록 더 깊이 새기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법.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기획기사를 연재한 신문들의 기획 취지 역시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각 신문들의 기획기사를 비교해본 결과 각기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중앙․동아일보, 한겨레․경향신문 등 5개 신문의 기획기사를 지금부터 파헤쳐 보기로 한다.

                                                     <각 신문 기획기사 목록>

신 문

기획기사 제목

조선일보

韓·日 강제병합 100년… 조선의 운명 가른 '다섯 조약' 현장을 찾아

韓·日 강제병합 100年, 내일을 말한다 (이상 2건)

중앙일보

[경술국치 100년 기획] 망국의 뿌리를 찾아

동아일보

[한일강제병합 100년]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한겨레신문

[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경술국치100년 새로운 100년

경향신문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한다

 

신문에서 주로 다뤘던 소재에 따라 기획기사의 경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강제병합과 식민통치 기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서술하는 데 초점을 둔 조선과 중앙, 그리고 광복 이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 한겨레와 경향이 그것이다. 동아는 이 두 가지 소재를 적절히 담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한편, 향후 한일 양국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실은 신문은 조선, 동아 한겨레였다. 조선의 경우 2건의 기획기사를 실었는데, 앞서 언급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것 이외에 양국의 미래에 대한 기획기사가 있었다. 양국의 향후 과제에 대한 시각 역시 신문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한일 강제병합 직전의 과정에 주목한 조선과 중앙

 

당시 역사의 서술에 초점을 둔 조선과 중앙의 기획기사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두 신문 모두 한일 강제병합이 체결된 시기까지의 역사만을 기사에 담았다는 것이다. 당시 국제적인 정세를 설명함과 더불어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한 식민지화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라를 빼앗기는 수치를 당했던 과정이 어땠는지 알아보고 교훈을 얻자는 취지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획기사의 내용만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라든지 한국의 대처에 대한 반성 등을 충분히 알 수 없었다. 조선의 경우 역사적인 조약이 일어났던 현장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찾아감으로써 그 흔적의 변화만을 조명할 뿐 역사적인 교훈은 얻을 수 없었다. 중앙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의 오랜 야욕을 자세하게 보여주었지만, 역사교과서 내용을 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더구나 두 신문 모두 식민 통치 이후 벌어진 일제의 만행 및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아 경술국치 100년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의 경우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전하는 대신, 식민통치의 피해자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한겨레는 일본 탄광에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들을 비롯해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렸다. 또한 역사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한일 양국의 과거사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음을 알렸다. 경향은 양국의 시민활동가들의 의견을 빌어 개인 청구권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비교적 이슈가 된 문제뿐만 아니라, 여자근로정신대 같은 생소한 문제도 심층적으로 다뤘다.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획기사였다.

 

동아는 강제병합이 일어나기 전부터 식민통치 기간, 광복 이후의 문제들을 모두 다뤘다. 경술국치는 국제법 상 무효라고 한다거나, 일본 위안부 문제에 눈감은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등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것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식민통치 기간까지 역사적 서술을 실은 것은 조선, 중앙과 같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고, 광복 이후를 다룰 때에도 위안부, 역사 왜곡 등 문제만 제기할 뿐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협력하라는 조선

 

한일 양국 관계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또 하나의 기획기사를 실었다. 양국의 전 총리, 양국의 기업인, 양국의 유학생, 양국의 학자를 동시에 인터뷰하면서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역설했다. 결론은 ‘과거는 이제 덮어두고 하루 빨리 화해, 협력하자’였다. 물론 한일 양국이 지금보다 더 협력하는 관계가 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100년이란 긴 시간동안 양국이 감정의 골을 쉽게 없애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협력을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조선은 기획기사에서 양국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고 무조건 양국의 협력만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심하게 두드려 맞은 피해자에게 상처는 덮어 두고 가해자와 화해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동아의 경우 아직 기획기사 연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양국 관계에 대한 명확한 주장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한일 양국 간 증오와 불신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비판적으로 보고, 상호 노력을 통해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 외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차후 실릴 3차례의 기사를 통해 살펴봐야 하겠다.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역사에서 찾은 것은 한겨레와 경향이었다. 경향의 경우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끝나지 않은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양국의 향후 과제를 알려주었다. 한겨레는 한일 양국 시민단체 및 젊은이들의 움직임, 한중일 3국 학교 교사들의 의견 등을 실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역사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지 대안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문제를 덮어두거나,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미래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할뿐더러 현실성도 떨어진다. 이런 이유에서 한겨레와 경향이 말하는 양국의 향후 개선 과제가 다른 신문들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두고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 부르곤 한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늘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원인을 해소해나갈 때가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100년을 맞아 양국이 협력해 나가야 하는 목적은 국가의 위상이나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피해의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바로잡지 못한 역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함이 되어야 한다. 그 문제가 온전히 해결될 때가 돼서야 비로소 한일 양국의 관계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