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08.12.20 11월 23일 이야기
  2. 2008.12.20 노인과 소년
  3. 2008.12.20 11월 7일 이야기
  4. 2008.12.20 11월 4일 이야기
  5. 2008.12.20 11월 3일 이야기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2

일요일 아침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저절로 눈이 뜨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 얼굴을 보았다.

약간 상기된, 뭔가 비장한 표정.

군대에서 휴가가던 날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깨기 싫은 아침이지만 휴가가는 날 만큼은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거였다.

일어나자마자 무언가 알수없는 벅찬 마음과 비장한 각오를 갖고

열심히 세수와 양치를 했다.

 

오늘의 내 모습, 내 기분,

왠진 모르겠지만 그때와 비슷하다.

 

이젠 시험 따윈 긴장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아니면 이미 마음속에서 올해 내 목표를 저 멀리 보낸 것일까.

어쨋든 시험 앞두고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는 태도 만큼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올해 마지막 시험이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오지도, 오랫동안 달려오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결승선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미 결승선에 들어가있는 선수들과, 지금 나와 함께 달리고 있는 선수들, 어쩌면 내년에 함께 달리게 될 선수들,

가끔은 이 선수들과 같이 달리고 있는 것만으로 벅찰 때도 있다.

결승선을 보고 달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할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하자.

제한된 등수 안에 못들더라도 열심히 달려서 완주하자.

달릴수록 기록은 나아지기 마련이니까.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2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엔 자식들과 떨어져 부인과 단둘이 살았습니다.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이던 그였지만, 명절 때가 되어 가족들을 만났을 땐 반가운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그런 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손자가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어렸을 적 그의 말을 무척 잘 들었고, 공부도 썩 잘 해서 집안의 장손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소년에게 기대가 컸던 노인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린 소년에게 천자문을 가르쳤고, 명심보감을 외우게 했습니다. 또, 웃어른을 대하는 예절과 조상께 감사하는 마음, 식사 예절 등을 아주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워낙 무뚝뚝했던 노인은 소년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엄하게 잔소리만 늘어놓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는 그 잔소리 하나하나가 소년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었겠지요.

 

하지만 소년은 노인의 잔소리를 너무도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그는 참고 또 참으면서 노인의 요구에 잘 따랐습니다. 그가 사춘기라는 것을 맞은 후부터일까요? 소년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노인을 보는 눈에는 이유 모를 반항심 같은 것이 생겨났고, 소년은 노인에게 직접 대들지 않는 대신 그에게 쌀쌀맞게 대했습니다. 자신을 이해 못하고 지나치게 기대만 하는 노인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폭발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좀 더 나이가 들자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인이 얼마나 소년을 생각하는지, 그에게 주어진 요구들도 다 그를 위한 노인의 배려였다는 것을. 그리고 소년에게 노인은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분이라는 걸. 그래서 소년은 그를 뵈러 갈 때마다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노인과 함께 있을 때면 노인에게 짜증부터 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그의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소녀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이 노인을 닮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노인이 되어 자신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러면서도 노인을 절대로 닮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소년이 얼마나 우스운지요.

 

전 정말 나쁜 녀석입니다. 그 소년이 바로 저거든요. 전 정말 할아버지께 잘 해드린 게 없는데 아직도 세상에서 절 제일 사랑하시는 할아버지를 뵐 때면 너무 죄송한 맘이 듭니다. 제가 이 다음에 커서 집안을 빛내는 큰 인물이 되어서야 할아버지께 용서를 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들어 제 그런 모습을 기대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옛날의 그 위엄있고 당당하시던 모습도 많이 잃으시고, 당신이 저의 짐이 될까봐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옛날엔 안 그러시던 분이 말이죠. 전 정말 그 분만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곤 합니다. 저도 그 분을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 고백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토록 꺼내기 어려웠던 말... "사랑해요, 할아버지. 제가 커서 성공할 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앞으로 정말 효도할게요."

----------------------------------------------------------------------

우연히 발견한 고등학교 교내 신문, 그리고 2학년 1반 이혁진 군의 글.

10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반성을 지금도 하고 있구나.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1

군대에 있을 적에

내가 어떤 주위 사람들보다도 더 힘든 곳에서 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강원도에 있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박격포 다루는 보직이 빡세기로 유명한 것이잖아..

그런데도 나는 꿋꿋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격려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이 군생활 힘들다고 할 때마다 조금 비웃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할 때쯤에 느낀 것은,

군인은 모두 갇혀있다는 것 때문에 똑같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 외에 훈련 강도나 사는 환경이 차이나는 것은 몸이 알아서 적응하게 되면,

몸으로 느끼는 정도는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의 나는 다시

내가 세상 누구보다 힘든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 같다.

그 힘든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고, 잘 감당하고 있다며 격려하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잘 이겨내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재촉하는,

내안의 또 다른 나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만큼의 짐은 짊어지고 살아간다.

많은 또래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전형 과정이 순탄치 않아 맘 고생 중이고,

한 친구는 졸업 후 취업준비에 정신없을 시기에 아버지 건강까지도 안 좋으셔서 더욱 힘들테고,

3번째 고시에 도전하는 친구의 마음도 분명 편하지만은 않을테고,

이미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도 이런 저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나만 이따 만큼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내가 진 짐의 무게가 제일 가벼울 지도 모른다.

내 짐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내 이기심 때문이고 그걸 굳이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무거운 짐을 잘 짊어지고 있다고, 조만간 짐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런 거 신경쓰느라 짐을 짊어지는 기운이 더욱 소진되고 있지 않은가.

 

이혁진, 남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0

신문분과 운영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과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는 오후 7시부터 촛불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8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 집회 장소에는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경선이가 만든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KBS의 막무가내 사장 교체 과정과 그 이후 KBS의 보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제1의 공영방송 KBS.

수십년간 이어온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요즘 KBS 뉴스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을 연상케하는 '땡박뉴스', 정말 9시 땡하고 이명박의 동정 보도가 나올 때가 많았다.

조계사 근처에서 한 식당 주인이 회칼로 칼부림을 한 사건이 있던 날, KBS가 보도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홍보하는 보도였다.

KBS 서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추운 날씨에도 꿋꿋이 자리를 채워준 사람들.

'KBS 지킴이' 카페를 만들어 활동 중인 시민들.

자리에 참석해주신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정태인 아저씨 등등

그리고 오늘 자리를 기획한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분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한국 언론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나는 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은 것일까?

항상 어려운 질문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49

월요일 오후 3시, 할아버지와 함께 카톨릭 성모자애병원에 왔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지난주에 받으신 근전도 검사 결과를 알아보는 날이다.

 

평일 오후 3시의 병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경과 앞에 모여서 앉아계신다.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검사를 받고 결과를 알아보러 오신 모양이다.

기운없이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니 남일같지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엔 지하철에서 힘겹게 서계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의사 말이 하체 말초신경이 많이 약해지셨다고 한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의사 말이 어려운지 할아버지는 표정을 찡그리신다.

나라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으니

그동안 몰랐던 할아버지의 고통이 눈에 그려진다.

 

밤마다 잠을 못 주무셨었구나..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셨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할아버지께서 제 몸 하나 못가누시는 것에 귀찮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바쁜 시간 쪼개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온다고 부모님께 생색냈던 것도 부끄러워진다.

 

괜시리 죄송한 마음에 평소 무뚝뚝했던 손자가 싹싹해지려고 노력한다.

역시 무뚝뚝해 보이기만 했던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밝은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한다.

 

백수 생활 4개월 째,

힘든 시간 속에서 새롭게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