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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1

군대에 있을 적에

내가 어떤 주위 사람들보다도 더 힘든 곳에서 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강원도에 있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박격포 다루는 보직이 빡세기로 유명한 것이잖아..

그런데도 나는 꿋꿋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격려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이 군생활 힘들다고 할 때마다 조금 비웃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할 때쯤에 느낀 것은,

군인은 모두 갇혀있다는 것 때문에 똑같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 외에 훈련 강도나 사는 환경이 차이나는 것은 몸이 알아서 적응하게 되면,

몸으로 느끼는 정도는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의 나는 다시

내가 세상 누구보다 힘든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 같다.

그 힘든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고, 잘 감당하고 있다며 격려하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잘 이겨내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재촉하는,

내안의 또 다른 나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만큼의 짐은 짊어지고 살아간다.

많은 또래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전형 과정이 순탄치 않아 맘 고생 중이고,

한 친구는 졸업 후 취업준비에 정신없을 시기에 아버지 건강까지도 안 좋으셔서 더욱 힘들테고,

3번째 고시에 도전하는 친구의 마음도 분명 편하지만은 않을테고,

이미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도 이런 저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나만 이따 만큼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내가 진 짐의 무게가 제일 가벼울 지도 모른다.

내 짐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내 이기심 때문이고 그걸 굳이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무거운 짐을 잘 짊어지고 있다고, 조만간 짐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런 거 신경쓰느라 짐을 짊어지는 기운이 더욱 소진되고 있지 않은가.

 

이혁진, 남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50

신문분과 운영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과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는 오후 7시부터 촛불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8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 집회 장소에는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경선이가 만든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KBS의 막무가내 사장 교체 과정과 그 이후 KBS의 보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제1의 공영방송 KBS.

수십년간 이어온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요즘 KBS 뉴스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을 연상케하는 '땡박뉴스', 정말 9시 땡하고 이명박의 동정 보도가 나올 때가 많았다.

조계사 근처에서 한 식당 주인이 회칼로 칼부림을 한 사건이 있던 날, KBS가 보도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홍보하는 보도였다.

KBS 서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추운 날씨에도 꿋꿋이 자리를 채워준 사람들.

'KBS 지킴이' 카페를 만들어 활동 중인 시민들.

자리에 참석해주신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정태인 아저씨 등등

그리고 오늘 자리를 기획한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분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한국 언론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나는 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은 것일까?

항상 어려운 질문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
일상의 단상2008. 12. 20. 13:49

월요일 오후 3시, 할아버지와 함께 카톨릭 성모자애병원에 왔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지난주에 받으신 근전도 검사 결과를 알아보는 날이다.

 

평일 오후 3시의 병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경과 앞에 모여서 앉아계신다.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검사를 받고 결과를 알아보러 오신 모양이다.

기운없이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니 남일같지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엔 지하철에서 힘겹게 서계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의사 말이 하체 말초신경이 많이 약해지셨다고 한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의사 말이 어려운지 할아버지는 표정을 찡그리신다.

나라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으니

그동안 몰랐던 할아버지의 고통이 눈에 그려진다.

 

밤마다 잠을 못 주무셨었구나..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셨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할아버지께서 제 몸 하나 못가누시는 것에 귀찮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바쁜 시간 쪼개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온다고 부모님께 생색냈던 것도 부끄러워진다.

 

괜시리 죄송한 마음에 평소 무뚝뚝했던 손자가 싹싹해지려고 노력한다.

역시 무뚝뚝해 보이기만 했던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밝은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한다.

 

백수 생활 4개월 째,

힘든 시간 속에서 새롭게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온자매 아빠